100년 역사의 샘고을시장을 장바구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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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필요한 게 있나요? 그렇다면 정읍의 시장으로 오세요. 1914년에 문을 열어 무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샘고을시장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없을 것 같은 물건도 조금만 발품을 팔면 나타나는 이곳이 샘고을시장입니다.  시장이 너무 커서 길을 헤맬지도 모르겠네요. 안내자가 되어 줄, 정읍 주민들과 함께 장을 보러 떠나봅니다.



옥분 씨의 가족맞이



내일은 김옥분 씨의 75세 생일입니다. 생일을 맞아 자식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합니다. 옥분 씨는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부리나케 시장에 장을 보러 갑니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딸을 고운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어 오랜 단골 미용실에 먼저 들립니다. 아침 시장은 조용한데, 미용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북적북적합니다.



‘하이고, 옥분이는 자식들 온다고 아침부터 분주하구먼’


친구들이 옆에서 뭐라고 하든, 뭘 사야 할지 고민이 가득한 옥분 씨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일단 깔끔한 옷을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며느리가 올 때마다 냉장고 바지를 탐내던데, 선물로 하나 담습니다. 

날이 쌀쌀해지니 새로 나온 누빔 이불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 이불에 손녀를 재우는 상상을 하다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게 좋을까 싶어 옆집에서 작은 전기장판을 장만합니다. 손녀딸 손 잡고 왔던 시장에서 강아지 베개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옥분 씨는 누빔 이불 대신 강아지 베개를 하나 더 삽니다. 



‘옥분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손이 커?’


만나는 상인마다 짐이 많은 옥분 씨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옥분 씨는 별거 아니라며 대답하면서도 생일 때마다 내려오는 가족들 자랑을 은근슬쩍 합니다. 자주 내려오진 못하더라도 늦가을 옥분 씨 생일이면 꼭 내려오는 가족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제일 중요한 먹을 걸 까먹었네요. 부리나케 정육점에서 고기 두 근과 손녀에게 줄 꿀떡과 모시송편까지 샀습니다. 얼른 내일 아침이 되었으면 하는 옥순 씨입니다.




민성 씨의 새로운 시작 


작년 이맘때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높은 하늘을 보다 결정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기로. 40대가 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던 민성 씨는 지난달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정읍에 왔습니다. 요즘은 작은 심야식당을 계획하고 있어 매일매일이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고수에 한창 맛 들인 민성 씨는 식당 음식에도 다양한 향 채소를 시도해 보려고 집 앞에 텃밭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자재를 사러 시장에 갑니다.


아직 점심을 먹기 전이라 꼬르륵 소리가 유난입니다. 점심 메뉴는 팥칼국수로 결정했습니다. 날이 추우면 꼭 먹었던 음식인데, 서울에서는 이 맛을 찾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와 종묘사부터 들릅니다. 지난주에 미리 부탁해 놓은 고수 모종을 오늘 받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뭐 해 먹으려고 고수까지 텃밭에 심는데?’


많이 찾는 모종이 아니다 보니, 주인이 민성 씨에게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사실 아직 메뉴까지 생각해본 적 없는 민성 씨는 얼버무리다가 엉겁결에 종묘사 주인을 식당에 초대해버렸습니다. 벌써 머리가 아프지만, 그건 내일의 민성 씨가 해결해 줄 겁니다. 모종은 샀으니 이제 방수포를 사고, 대장간에 농기구를 사러 가야 합니다.


‘삽이랑 곡괭이 만들어 두신 거 있어요?!’


대장장이 사장님이 두드리고 때리시느라 정신이 없으신가 봅니다. 두 번인가 더 큰 소리로 부르고 나서야 사장님이 나오셨습니다. 필요한 걸 다 사고 시장 나서려는데 허기가 집니다. 팥칼국수를 곱빼기로 주문했어야 했는데, 괜히 보통으로 시켰나 봅니다. 마침 시장 안에서 ‘뻥-’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가득 퍼졌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허기를 달래고 남은 건 이따 밤에 맥주랑 먹어야겠다 싶은 마음에 냉큼 뻥튀기 한 봉지를 샀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이, 작년에 보았던 하늘보다 어쩐지 더 높고 푸릅니다.




샘고을시장 가는 법

축구장 5개를 합친 크기의 시장이니 만큼 문이 13개가 나있습니다. 정읍 원도심에 있다면 어디에서든 표지판을 보고 쉽게 시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찾기가 어렵다면 이 주소(전북 정읍시 시기동 553 늘봄)를 검색해보세요.


글 · 사진 | 올어바웃 @all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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