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정읍 같은 소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 자신의 일을 찾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적인 성장도 거두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경험도 하죠. 자신이 회복될 수 있는 곳,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곳. 고향에 돌아온 이들은 도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다시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을 혼자만의 꿈이 아닌, 아버지와 형제들을 포함해 온 가족의 꿈으로 일궈가는 농장이 하나 있습니다. 정읍 상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 전북 순창에 자리잡은 ‘아빠따라 농장’입니다. 비와 눈을 맞으며 자라나는 농작물, 그 작물은 물론 서로를 돌보며 건강하고 단단해지는 가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4남매와 아빠가 함께 하는 농장
“4남매가 모여 아버지의 농작물을 팔아보자고 결심했어요.”

Q. 대표님 본인을 포함해 농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지영이고 광고 콘텐츠 제작 일을 하면서 독학으로 촬영과 편집 공부를 하며 영상을 만들어왔어요. 어려서부터 정읍에 살아왔고, 지금도 정읍에 살면서 전북 순창에서 아빠따라 농장을 운영합니다. 저희 농장은 30년 차 프로농부인 아버지와 감각적인 4남매와 함께 하는 곳인데요. 봄에는 두릅, 여름에는 복분자, 가을에는 순창에서 자라는 사과대추인 ‘미왕과'와 미니사과를 키워요.
Q. ‘감각적인 4남매’라는 소개 문구가 농장 인스타그램에서 적혀 있어서 인상 깊게 봤어요. 감각적인 4남매는 누구누구인가요? 각자 맡은 역할도 궁금해요.
첫째인 큰 언니는 농장의 전반적인 경영 운영 업무를 해요. 예를 들면 지원 사업 등등 하는 거죠.
둘째인 저는 농장을 알릴 콘텐츠를 만들면서 치유농업 관련 사업을 관리하고요.
한식을 전공했지만 제과로 진로를 틀어 얼마 전 프랑스 제과학교를 졸업한 셋째 딸은 농장의 메인 모델이자, 농장에 있는 작물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사진 속 모델이 셋째입니다.
넷째이자 막내인 남동생은 저희가 하기 힘든 농사일에 힘이 필요한 부분을 맡아서 해요. 대학생인데 기계우주항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동생도 뜻이 맞아 농생명과학과로 전과했어요. 지금은 아버지 뒤를 이어 농업지도사 혹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게 목표입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본업이나 학업이 있기 때문에, 농장 일을 도울 수 있을 때 시간을 내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Q. 사업 아이템으로 농업을, 그것도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보통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시로 가서 취업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떻게 가족이 모여 일하게 됐나요?
제가 도시에 나가 일하다가 몸이 아팠어요. 서울이나 경기 쪽의 큰 도시가 저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고향인 정읍에 내려와 치료하게 된 게 4년 전인데 그때 아버지의 농사 일을 살펴보게 됐죠. 농산물이 잘 안 팔리는 데다가 30년 동안 농사일을 계속 해오던 아버지에게 번아웃이 온 상태였어요. 사무직은 주 5일 일하고 주말에 쉴 수 있는데 아버지는 주7일 모두 일하셨거든요. 처음에는 시간이 될 때 조금씩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게 전부였어요. 원래는 아버지를 돕자는 취지로 시작한 데다가 각자의 일이 있었거든요. 셋째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자고 해서 일단 시작을 한 거죠. 결국 4남매가 모여 회의 끝에 아버지의 농산물을 팔아보자 결심한 거예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 판매를 하거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라이브 커머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2~3년 동안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갔어요.

Q. 아버지는 4남매의 농장일 참여를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저희가 조금씩 아빠 일을 도와드리면서, 부모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들을 계속하는 상황이 됐어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온라인에 올릴 아빠 인터뷰를 하기도 했거든요. 그런 시도들을 아빠가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농사일을 했을 때 점점 지쳐갔는데, 저희가 농장 일을 돕게 된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환기 혹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농장 체험에 필요한 숙소를 짓는 데도 아빠가 적극적으로 나서거든요. 스스로 즐기시는 것 같아요.
Q. 아버지가 하던 기존의 일에 4남매가 만든 새로운 일을 더해지면서 활기가 생긴 점이 멋집니다. 다만 일이란 게 늘 즐겁지는 않잖아요. 가장 가까우면서도 때로는 가장 상처를 주는 관계인 가족과 일하는 건데, 협업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요. 의견이 다를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해요.
저희 남매는 누군가가 “합시다" 하고 제안하면 다 같이 마음 모아서 쭉 같이 일하는 스타일이에요. 서로 맡은 분야가 잘 나눠져서 각자의 일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함께 일하고요. 일단 큰 언니는 추진력이 있어서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에요. 언니가 앞서 가면 저는 그 뒤를 따라가며 사부작사부작 하는 방식으로 일이 굴러가는 거죠. 저희끼리의 소통 외에, 저희와 아버지와의 소통도 있어요. 4남매 중 누군가가 아버지와 의견이 안 맞을 때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소통하거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요.
농장의 일상을 담은 색다른 영상들
“농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내용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어요.”

Q. 아빠따라 농장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에 색다른 포스팅이나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특히 농장 영상을 보면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해온 선영님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느껴졌는데요. 관련된 작업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일단 1차 목표는 아빠따라 농장을 알리는 거였어요. 아빠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번아웃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서, 이런 시도들이 환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죠. SNS 계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가 아빠따라 농장에 오게 하려면 약간 특이하게 계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행하는 틱톡 춤도 춰보고 사람들의 눈에 띄일 요소를 영상 게시글이나 인스타그램 릴스로 많이 올렸죠. 농산물 자체를 홍보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저희는 영상을 찍으면서 좀 다르게 접근한 거죠. 농장생활을 영화처럼 만든다거나, 농장에서 일하는 아빠가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요. 그런 식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 연령대가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해졌어요.
Q. 유튜브 등 SNS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스마트 스토어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개인 판매를 한 뒤로부터 사람들한테서 많은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저번 두릅 시즌에는 모르는 분에게 전화가 왔는데, 누군가에게 저희농장 두릅을 선물받은 분이 감사하다고 오랫동안 전화로 말씀해주셨어요. 자기 부모님이 아프셔서 몸에 좋은 제철음식을 찾고 있었는데, 두릅이 깔끔하게 포장돼 싱싱한 상태로 오니까 더 마음에 들어하셨던 듯해요.

Q. 이런 온라인 경험 덕분에, 최근에는 지영 님이 농장일 뿐만 아니라 워크숍 강사로도 활동하신다고요.
농장이 있는 곳이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거든요. 이곳 마을의 청년회에서 동영상 크리에이터 교육을 해달라고 하셔서 그분들과 영상을 찍기도 했죠. 제품 사진이나 콘텐츠 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은 분들이 직접 연락을 주시기도 해요. 농부님들은 고가의 카메라 장비보다 핸드폰을 사용해 예쁘게 잘 찍을 수 있는 법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을 직접 강의로 알려드리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부분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대신 찍어드립니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두 팀을 만나 인물과 제품 사진, 상세 페이지까지 만드는 작업을 했죠.
아빠따라 농장의 새로운 도전들
“몸이 상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농업에 관심 있어요.”

Q. 아빠따라 농장이 성장하면서 일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지는 중일 텐데요. 4남매 모두 전업으로 농장 일에 참여하나요?
지금은 제가 거의 전적으로 참여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본업을 따로 하고 있어요. 올해부터 농장에 상주하기 시작한 저도 농장 일에서 정기적으로 돈이 나올 수 없어서 따로 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더 해요.
저로써는 직접 농장 일을 꾸려가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농장 일을 확장할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저처럼 몸과 마음이 상하거나 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농업에 관심 있어요.
Q. 큰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 입장에서는 치유농업이라는 말이 낯설어요. 어떤 건가요?
농촌에서 있는 자원을 활용해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이나 피부병 등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치유 공간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는 10년 전부터 활성화됐고. 한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이슈가 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병원이나 복지관에서 치료 받거나 요양 중인 사람이 농촌에 올 수 있고, 우울증 등의 심리 질환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개인이 스스로 농장을 찾아가기도 해요. 아빠따라 농장에서는 아직 계획 중인데, 하게 되면 치유밥상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사계절에 맞는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체험을 할거예요. 치유농업과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련 지원사업이나 교육 등이 있는데 제가 교육을 받는 중이에요.

Q.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한다는 점도 있지만, 아빠따라 농장 일 자체가 선영 님에게 치유의 경험을 준 부분이 있어서 그걸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받아요. 어떤 부분일까요?
초반에 부모님과 농사 일을 할 때는 한 시간 일하고 눕고 그랬어요. 2년쯤 되니 일에 더 익숙해지고 밥도 잘 먹게 되더라고요. 나를 지지하는 식구들과 건강한 밥, 여기에 반복적인 루틴이 더해졌어요. 농장 일을 하게 되면 새벽에 일어나 이른 오후까지 일하거든요. 반복적인 일을 하게 되면 잡 생각이 안나요. 운동도 되면서 건강에 플러스가 된 거죠. 농장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마음도 들어요. 겨울 눈과 장마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자기만의 열매를 맺은 것들을 보면 왠지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많이 받았어요. 이런 나의 경험을 토대로 치유농장을 만들고 싶다, 나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 된 거죠.
‘아빠따라 농장'의 미래
“아빠따라 농장이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족이 모여 오래 살아온 지역에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시도 이후, 지금의 아빠따라 농장의 상황은 어떤가요?
농산물을 거의 50% 가량 라이브 커머스 쪽으로 판매해서 옛날보다 수익이 좀 많아졌어요. 작년까지 저희 남매 중 전업으로 매달린 사람이 없어서 새로운 시도에 큰 힘을 더한 건 아니지만, 당장의 판매보다 천천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아빠따라 농장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자는 목표로 꾸준히 일해왔죠. 그런 점에서 예전보다 판매량이 20~30%는 늘어났다고 봐요. 올해부터는 제가 상주하게 되면서 좀더 일에 힘이 붙었어요.

Q. 아빠따라농장 운영을 통해 아버지도, 지영 님도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함께 일한 다음부터 부모님의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아빠가 많이 변하셨어요. 새로운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일 관련한 공부를 하러 다니시기도 하고요. 옛날에는 축 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복분자와 두릅이 잘 되는 상황이거든요. 제가 새로운 일을 한다니까 아버지 본인도 즐거운 활력이 생기시는 거죠. 일이 바쁜 건 예전과 똑같지만 그래도 이전 방식으로 일할 때 묵혀졌던 때들을 저희들이 벗겨드리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가족들의 삶이 반영된 아빠따라 농장의 변화를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앞으로 농장은 어떻게 성장할까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는 시도가, 지금은 농장 일을 통해 비전이 있을 거란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초반에는 아버지 일을 도와드린다 정도로 생각했던 큰 언니와 셋째 동생도 점점 아빠따라 농장 운영에 시간을 투자해나가고 있고요. 각자의 꿈이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아빠따라 농장이 계속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지금은 치유농업과 관련해 농장에 사람들이 머물 숙소를 짓고 있고, 그 과정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에요.
가장 큰 목표는 아빠따라 농장의 시도가 점차 자리 잡히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농사 일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돈이 나오게 하고 싶어요. 그 다음은 치유농장을 잘 운영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충분히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죠. 이 꿈이 이뤄지려면 10년 정도 걸릴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 같아요. 제가 정읍에 살면서 전북 순창에서 농장 일을 하고 있는데, 정읍이나 순창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북권 아니 전국의 사람들이 청년,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게 농장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SNS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apa_ddara/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ayOEyFzc30s5IZCrfVCu9A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
보통 정읍 같은 소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 자신의 일을 찾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적인 성장도 거두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경험도 하죠. 자신이 회복될 수 있는 곳,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곳. 고향에 돌아온 이들은 도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다시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을 혼자만의 꿈이 아닌, 아버지와 형제들을 포함해 온 가족의 꿈으로 일궈가는 농장이 하나 있습니다. 정읍 상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 전북 순창에 자리잡은 ‘아빠따라 농장’입니다. 비와 눈을 맞으며 자라나는 농작물, 그 작물은 물론 서로를 돌보며 건강하고 단단해지는 가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4남매와 아빠가 함께 하는 농장
“4남매가 모여 아버지의 농작물을 팔아보자고 결심했어요.”
Q. 대표님 본인을 포함해 농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지영이고 광고 콘텐츠 제작 일을 하면서 독학으로 촬영과 편집 공부를 하며 영상을 만들어왔어요. 어려서부터 정읍에 살아왔고, 지금도 정읍에 살면서 전북 순창에서 아빠따라 농장을 운영합니다. 저희 농장은 30년 차 프로농부인 아버지와 감각적인 4남매와 함께 하는 곳인데요. 봄에는 두릅, 여름에는 복분자, 가을에는 순창에서 자라는 사과대추인 ‘미왕과'와 미니사과를 키워요.
Q. ‘감각적인 4남매’라는 소개 문구가 농장 인스타그램에서 적혀 있어서 인상 깊게 봤어요. 감각적인 4남매는 누구누구인가요? 각자 맡은 역할도 궁금해요.
첫째인 큰 언니는 농장의 전반적인 경영 운영 업무를 해요. 예를 들면 지원 사업 등등 하는 거죠.
둘째인 저는 농장을 알릴 콘텐츠를 만들면서 치유농업 관련 사업을 관리하고요.
한식을 전공했지만 제과로 진로를 틀어 얼마 전 프랑스 제과학교를 졸업한 셋째 딸은 농장의 메인 모델이자, 농장에 있는 작물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사진 속 모델이 셋째입니다.
넷째이자 막내인 남동생은 저희가 하기 힘든 농사일에 힘이 필요한 부분을 맡아서 해요. 대학생인데 기계우주항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동생도 뜻이 맞아 농생명과학과로 전과했어요. 지금은 아버지 뒤를 이어 농업지도사 혹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게 목표입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본업이나 학업이 있기 때문에, 농장 일을 도울 수 있을 때 시간을 내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Q. 사업 아이템으로 농업을, 그것도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보통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시로 가서 취업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떻게 가족이 모여 일하게 됐나요?
제가 도시에 나가 일하다가 몸이 아팠어요. 서울이나 경기 쪽의 큰 도시가 저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고향인 정읍에 내려와 치료하게 된 게 4년 전인데 그때 아버지의 농사 일을 살펴보게 됐죠. 농산물이 잘 안 팔리는 데다가 30년 동안 농사일을 계속 해오던 아버지에게 번아웃이 온 상태였어요. 사무직은 주 5일 일하고 주말에 쉴 수 있는데 아버지는 주7일 모두 일하셨거든요. 처음에는 시간이 될 때 조금씩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게 전부였어요. 원래는 아버지를 돕자는 취지로 시작한 데다가 각자의 일이 있었거든요. 셋째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자고 해서 일단 시작을 한 거죠. 결국 4남매가 모여 회의 끝에 아버지의 농산물을 팔아보자 결심한 거예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 판매를 하거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라이브 커머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2~3년 동안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갔어요.
Q. 아버지는 4남매의 농장일 참여를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저희가 조금씩 아빠 일을 도와드리면서, 부모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들을 계속하는 상황이 됐어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온라인에 올릴 아빠 인터뷰를 하기도 했거든요. 그런 시도들을 아빠가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농사일을 했을 때 점점 지쳐갔는데, 저희가 농장 일을 돕게 된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환기 혹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농장 체험에 필요한 숙소를 짓는 데도 아빠가 적극적으로 나서거든요. 스스로 즐기시는 것 같아요.
Q. 아버지가 하던 기존의 일에 4남매가 만든 새로운 일을 더해지면서 활기가 생긴 점이 멋집니다. 다만 일이란 게 늘 즐겁지는 않잖아요. 가장 가까우면서도 때로는 가장 상처를 주는 관계인 가족과 일하는 건데, 협업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요. 의견이 다를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해요.
저희 남매는 누군가가 “합시다" 하고 제안하면 다 같이 마음 모아서 쭉 같이 일하는 스타일이에요. 서로 맡은 분야가 잘 나눠져서 각자의 일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함께 일하고요. 일단 큰 언니는 추진력이 있어서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에요. 언니가 앞서 가면 저는 그 뒤를 따라가며 사부작사부작 하는 방식으로 일이 굴러가는 거죠. 저희끼리의 소통 외에, 저희와 아버지와의 소통도 있어요. 4남매 중 누군가가 아버지와 의견이 안 맞을 때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소통하거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요.
농장의 일상을 담은 색다른 영상들
“농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내용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어요.”
Q. 아빠따라 농장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에 색다른 포스팅이나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특히 농장 영상을 보면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해온 선영님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느껴졌는데요. 관련된 작업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일단 1차 목표는 아빠따라 농장을 알리는 거였어요. 아빠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번아웃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서, 이런 시도들이 환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죠. SNS 계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가 아빠따라 농장에 오게 하려면 약간 특이하게 계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행하는 틱톡 춤도 춰보고 사람들의 눈에 띄일 요소를 영상 게시글이나 인스타그램 릴스로 많이 올렸죠. 농산물 자체를 홍보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저희는 영상을 찍으면서 좀 다르게 접근한 거죠. 농장생활을 영화처럼 만든다거나, 농장에서 일하는 아빠가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요. 그런 식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 연령대가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해졌어요.
Q. 유튜브 등 SNS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스마트 스토어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개인 판매를 한 뒤로부터 사람들한테서 많은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저번 두릅 시즌에는 모르는 분에게 전화가 왔는데, 누군가에게 저희농장 두릅을 선물받은 분이 감사하다고 오랫동안 전화로 말씀해주셨어요. 자기 부모님이 아프셔서 몸에 좋은 제철음식을 찾고 있었는데, 두릅이 깔끔하게 포장돼 싱싱한 상태로 오니까 더 마음에 들어하셨던 듯해요.
Q. 이런 온라인 경험 덕분에, 최근에는 지영 님이 농장일 뿐만 아니라 워크숍 강사로도 활동하신다고요.
농장이 있는 곳이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거든요. 이곳 마을의 청년회에서 동영상 크리에이터 교육을 해달라고 하셔서 그분들과 영상을 찍기도 했죠. 제품 사진이나 콘텐츠 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싶은 분들이 직접 연락을 주시기도 해요. 농부님들은 고가의 카메라 장비보다 핸드폰을 사용해 예쁘게 잘 찍을 수 있는 법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을 직접 강의로 알려드리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부분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대신 찍어드립니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두 팀을 만나 인물과 제품 사진, 상세 페이지까지 만드는 작업을 했죠.
아빠따라 농장의 새로운 도전들
“몸이 상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농업에 관심 있어요.”
Q. 아빠따라 농장이 성장하면서 일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지는 중일 텐데요. 4남매 모두 전업으로 농장 일에 참여하나요?
지금은 제가 거의 전적으로 참여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본업을 따로 하고 있어요. 올해부터 농장에 상주하기 시작한 저도 농장 일에서 정기적으로 돈이 나올 수 없어서 따로 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더 해요.
저로써는 직접 농장 일을 꾸려가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농장 일을 확장할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저처럼 몸과 마음이 상하거나 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농업에 관심 있어요.
Q. 큰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 입장에서는 치유농업이라는 말이 낯설어요. 어떤 건가요?
농촌에서 있는 자원을 활용해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이나 피부병 등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치유 공간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는 10년 전부터 활성화됐고. 한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이슈가 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병원이나 복지관에서 치료 받거나 요양 중인 사람이 농촌에 올 수 있고, 우울증 등의 심리 질환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개인이 스스로 농장을 찾아가기도 해요. 아빠따라 농장에서는 아직 계획 중인데, 하게 되면 치유밥상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사계절에 맞는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체험을 할거예요. 치유농업과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련 지원사업이나 교육 등이 있는데 제가 교육을 받는 중이에요.
Q.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한다는 점도 있지만, 아빠따라 농장 일 자체가 선영 님에게 치유의 경험을 준 부분이 있어서 그걸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받아요. 어떤 부분일까요?
초반에 부모님과 농사 일을 할 때는 한 시간 일하고 눕고 그랬어요. 2년쯤 되니 일에 더 익숙해지고 밥도 잘 먹게 되더라고요. 나를 지지하는 식구들과 건강한 밥, 여기에 반복적인 루틴이 더해졌어요. 농장 일을 하게 되면 새벽에 일어나 이른 오후까지 일하거든요. 반복적인 일을 하게 되면 잡 생각이 안나요. 운동도 되면서 건강에 플러스가 된 거죠. 농장에서 자라는 농산물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마음도 들어요. 겨울 눈과 장마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자기만의 열매를 맺은 것들을 보면 왠지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많이 받았어요. 이런 나의 경험을 토대로 치유농장을 만들고 싶다, 나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 된 거죠.
‘아빠따라 농장'의 미래
“아빠따라 농장이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족이 모여 오래 살아온 지역에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시도 이후, 지금의 아빠따라 농장의 상황은 어떤가요?
농산물을 거의 50% 가량 라이브 커머스 쪽으로 판매해서 옛날보다 수익이 좀 많아졌어요. 작년까지 저희 남매 중 전업으로 매달린 사람이 없어서 새로운 시도에 큰 힘을 더한 건 아니지만, 당장의 판매보다 천천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아빠따라 농장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자는 목표로 꾸준히 일해왔죠. 그런 점에서 예전보다 판매량이 20~30%는 늘어났다고 봐요. 올해부터는 제가 상주하게 되면서 좀더 일에 힘이 붙었어요.
Q. 아빠따라농장 운영을 통해 아버지도, 지영 님도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함께 일한 다음부터 부모님의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아빠가 많이 변하셨어요. 새로운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일 관련한 공부를 하러 다니시기도 하고요. 옛날에는 축 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복분자와 두릅이 잘 되는 상황이거든요. 제가 새로운 일을 한다니까 아버지 본인도 즐거운 활력이 생기시는 거죠. 일이 바쁜 건 예전과 똑같지만 그래도 이전 방식으로 일할 때 묵혀졌던 때들을 저희들이 벗겨드리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가족들의 삶이 반영된 아빠따라 농장의 변화를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앞으로 농장은 어떻게 성장할까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는 시도가, 지금은 농장 일을 통해 비전이 있을 거란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초반에는 아버지 일을 도와드린다 정도로 생각했던 큰 언니와 셋째 동생도 점점 아빠따라 농장 운영에 시간을 투자해나가고 있고요. 각자의 꿈이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아빠따라 농장이 계속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지금은 치유농업과 관련해 농장에 사람들이 머물 숙소를 짓고 있고, 그 과정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에요.
가장 큰 목표는 아빠따라 농장의 시도가 점차 자리 잡히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농사 일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돈이 나오게 하고 싶어요. 그 다음은 치유농장을 잘 운영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충분히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죠. 이 꿈이 이뤄지려면 10년 정도 걸릴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것 같아요. 제가 정읍에 살면서 전북 순창에서 농장 일을 하고 있는데, 정읍이나 순창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북권 아니 전국의 사람들이 청년,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게 농장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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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