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한 초록이 머무는 정읍의 사랑방, 대한 꽃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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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정읍의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 곁에 오래 함께 해온 가게들이 보입니다. 생겨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했거나, 오랜 시간 변화를 겪으며 한 자리를 오래 지켜온 가게들이죠. 늘상 거기에 있기에 당연하게 느껴지는 곳들이랄까요. 하지만 한 자리를 오래 지키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맷집 있게 버티는 일이기도, 때로는 현실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애써서 성장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꽃'을 매개로 정읍 사람들과 함께 해온 가게가 있습니다. 특별한 날마다 이를 축하하는 꽃으로, 혹은 공간에 생기를 더하는 식물들이 있는 곳, 정읍의 꽃집 ‘대한꽃시장'입니다. 우승혜 대표는 20대 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50대인 지금까지 이 가게를 지켜왔는데요. 가게는 꽃집이면서 동시에 식물을 보며 쉬어가는 정읍 사람들의 사랑방으로도 자리잡았습니다.



라벤더와 구절초 등 여러 향기를 품은 정읍. 향기 공화국이라 불리는 정읍에서, 생기를 머금은 초록의 식물들과 함께 해온 대한 꽃시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사업의 꿈을 이루게 해준 꽃집



“꽃집을 차리는 과정에서 정읍에 사는 주변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Q. 1층 건물 두 곳을 사용할 만큼 꽃가게 규모가 커서 놀랐어요. 식물들도 넉넉하고 예쁜 꽃들도 가득해서 환하고요. 찾아오는 분들도 많던데, 이렇게 단단히 뿌리내린 가게의 시작이 궁금해요.

스무살 때 처음 뭔가를 팔아봤는데 그게 꽃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부모님에게 100만원을 받아서 고등학교 졸업식장 앞에서 꽃을 팔았죠. 아는 삼촌에게 트럭을 빌려 어설프게 만든 꽃다발을 좌판에 깔아놓고 장사를 했어요. 그 경험 이후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직장생활을 했는데 크게 재미가 없었고, 결국은 꽃집을 운영하면서 광주나 서울 등지로 발품을 팔며 꽃에 대해 배우러 다녔어요. 꽃집을 차릴 때 돈이 얼마 없었는데 건물 주인분도 저를 인상깊게 봐주시고, 이웃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보증금도 해결할 수 있었고요. 그렇게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꽃집 공간을 마련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는 부분이에요. 꽃집을 운영하는 동안 꽃 납품 일을 하던 거래처 직원으로 만난 남편과 결혼도 했네요. 이후로 정읍에서 최초로 플로리스트 기사 자격증을 땄고, 서울이나 네덜란드 등지에서 아카데미에도 다녔어요. 그런 식으로 꽃에 대한 일을 해온 게 30년, 어느덧 큰 아이가 스물아홉살이네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어요. 


Q. 말씀을 듣다 보니 꽃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들이셨네요. 배움뿐만 아니라, 가게를 자리잡게 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인 대표님만의 노력이 있었겠지 싶어요.

꽃집을 시작할 때는 정읍의 많은 분들이 올 수 있게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가게 앞에 큰 트리를 설치해서 예쁜 게 보여 찾아와 구경하게끔 한 거죠. 꽃집 안에 차 마시는 공간도 마련하고 의자도 두었어요. 가게 안에 자판기도 놓아두었는데, 그냥 마시고 갈 수 있도록 동전을 미리 넣었죠. 그렇게 가게에 머무르러 온 분들이 앉아 있다가 식물을 사가기도 하고, 꽃집으로 찾아온 택시기사 분들이 손님에게 꽃집을 소개해주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이곳이 꽃집이면서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했죠. 



Q. 가게를 잘 꾸며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신 거네요. 가게에 머무는 사람들이 꽃을 구경하면서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도 중요했을 테고요. 

정읍 사람들이 찾는 꽃 취향에 대해 고려했죠. 정읍은 작은 지역이라, 유행을 못 따라가도 안 되지만 너무 앞서가도 안 되더라고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잘 나가는 꽃다발 스타일로는 정읍에서 수요가 낮았어요. 꽃다발 같은 걸 만들 때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절충점을 찾아갔죠. 재미있는 건 정읍 사람들이 유난히 꽃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전주나 군산 등 대도시를 다녀봐도 개업집에 꽃 화분이 즐비하게 있는 데가 잘 없거든요. 근데 정읍에서는 누가 개업했다고 하면 화분을 많이 사서 선물해요. 그렇게 받은 화분을 가게 앞에 쭉 세워두고요. 



한 곳에서 오래 꽃집을 하며 겪은 변화



“사람들이 꽃을 사는 방식도, 찾는 꽃과 식물의 취향도 바뀌고 있어요.”



Q. 30년 동안 꽃집을 꾸려오셨잖아요. 같은 가게지만 운영 방식이 점점 바뀌었을 텐데요. 지금 떠올려봤을 때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가게를 연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유튜브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무조건 가게에 와서 물건을 직접 본 후에 구입 했구요. 그때 장사가 잘 되는 척도는 가게로 직접 주문전화가 많이 오는 거였죠.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카카오톡은 물론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활용한 주문창이 있잖아요. 꽃집 운영에 제 아들과 딸이 참여하는데요. 딸 아이만 해도 인스타그램을 잘 활용해요. 서울 쪽 대도시권 꽃집의 인스타그램 계정 게시글들을 보면서 어떤 포장지를 쓰는지, 꽃다발 유행이 어떤지 저에게 보여주죠. 아이들에게 온라인 기반의 소통 부분을 전부 맡겼어요. 저는 꽃집에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고 제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Q. 꽃이나 식물을 찾는 손님들의 취향에 대한 건 어때요?

물건을 사가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일단 젊은 분들은 거의 예약제 방식으로 물건을 사요. 온라인 계정에서 보고 마음에 든 물건이 있으면 딱 정찰제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죠. 미디어에서 나오는 꽃의 유행을 빠르게 흡수하고요. 나이든 분들도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행의 흐름에 따라가요. 물론 예전 취향을 고수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가게에 와서 옛 스타일의 꽃다발을 주문하거나 물건을 보고 가격을 흥정하기도 해요.

화분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크기가 큰 도자기 스타일의 화분을 많이 찾았거든요. 지금은 손님들 취향이 좀 모던하게 바뀌었어요. 화려한 화분이나 꽃 대신에 심플한 것들을 주로 찾아요. ‘식물 테크'라고 해서 재테크 수단으로 식물을 구입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분들은 먼 지역에서도 해당 식물을 사러 직접 정읍에 와요.



사업의 오르막에서 내리막을 준비하며 얻은 시선



“고령화가 진행되는 정읍에서 도시의 변화를 감안해 사업플랜을 짤 줄 알아야 해요.”



Q. 꽃에 대해 배우러 다른 도시나 나라에 갔다 온 경험이 있긴 하지만, 결국 정읍에서 쭉 살면서 사업을 해오셨잖아요. 외부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런 점이 참 신기해요. 자영업은 사업자 스스로도 잘 해야겠지만, 주변 여건이 자꾸 변해서 더더욱 오랫동안 하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심지어 작게 시작한 꽃집이 지금처럼 크게 성장했고요. 오래 자리를 지켜온 그 자체로 큰 힘이 드는 일이었을 거잖아요.

가족이 이 일을 같이 안 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들도 그렇고 남편도 성실한 사람이라 가게 일을 계속 도와주었죠. 가게를 꾸리는 일은 누가 함께 해주느냐가 무척 중요하더라고요. 혼자 다 할 수 없어요. 그간의 가게는 가족들 덕에 꾸려갈 수 있었고, 이제는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어요. 정읍에 넓은 땅을 매입해 사람들이 찾아와 힐링 할 공간을 꾸릴 생각이에요. 정읍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자원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까지의 가게가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성장기를 넘어 쇠퇴하는 시기가 있을 텐데 그 때를 준비하려는 거예요. 



Q. 가게에 대한 오랜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긴 시간 정읍에서 자리 잡아온 선배 상인으로서도, 요즘 정읍에 자리잡은 젊은 상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정읍에서 사업을 시작한 청년 상인들이 여럿 보이거든요.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열정이 있어요. 그걸 나이 든 사람들이 잘 이끌어줘야 해요. 나이 든 사람들은 가게를 어디서 잡아야 할지, 어디에 상권이 형성돼 있는지 등을 잘 알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 부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줘야 해요. 잘 노출되도록 해야 하는 거죠. 젊은 분들도 정읍에 대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정읍의 중심가는 10년 단위로 한번씩 바뀐다는 거예요. 기존 중심가가 조성돼 있어도 관공서가 이전하면 그쪽의 상권이 활성화되는 식이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건, 정읍에서 뭔가를 하려는 젊은 상인들이 사업의 포커스를 고령화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분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집중하잖아요. 근데 정읍은 고령화가 진행되는 곳이거든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 사업을 하면서 다른 플랜을 꾸준히 짤 줄 알아야 해요. 



주소: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 362-2

전화: 063-533-8813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k_flowermarket/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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