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의 삶이 담긴 꿈의 집, 비티비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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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겨울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눈소식에 부랴부랴 장작을 패어 쌓아두고 혹시라도 시내를 못나갈 수도 있어 식료품도 준비합니다. 내일 아침은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쓸어야 하며 집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까 살펴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건, 아이와 함께 만들 눈사람과 눈썰매를 기다리는 건, 큰 행복입니다.”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아름다운건축물 일반 부문에 선정된 집이 정읍에 있다는 사실, 혹시 아시나요? 집이 있는 동네를 찾아가면 경사진 지형 때문에 ‘여기에 뭘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반지하처럼 보이는 집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 재미난 모습이 드러납니다. 



‘큰돌집'이라 불리는 이 집은 비티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 김준섭 소장이 만든 정읍에서의 첫 프로젝트이자 그의 가족이 함께 사는 꿈의 공간입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김준섭 소장과 대화하면서 가족과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삶과 공간을, 그 모든 것이 펼쳐지는 무대인 정읍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생활자, 정읍에 오다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는 곳을 정읍으로 옮기고 싶어졌어요.”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김준섭입니다. 지금은 <비투비 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독립해 저만의 일을 해요. 학창시절부터 친구들에게 건축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결국 다른 직업을 생각한 적 없이 건축 일을 배워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정읍으로 옮겨와 사는데 올해로 4년째이고요. 어릴적 정읍에서 살았던 아내와 달리 저는 정읍에서 사는 게 처음입니다. 


Q. 정읍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처가가 정읍에 있어요. 정읍에 내려가면 어머님이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을 많이 주셨죠. 아내가 정읍에 머무르면 제가 일주일에 한번 정읍에 가서 아기를 보고 다시 서울로 가곤 했거든요. 그때 느꼈던 게, 정읍 집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집에 있다가 리프레시 하고 싶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야 하는 식이잖아요. 정읍에서는 문만 열면 밖으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그 감각이 강하게 와닿았어요. 어릴적 지역에서 살다가 도시로 온 분들이라면 기억으로라도 갖고 있을텐데 애초에 아파트 키드로 태어났다면 거의 못 느끼거든요. 

그러면서 어머님이 가꾸신 마당을 유심히 봤어요. 이 정도 땅이면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죠. 공간을 다루는 일이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땅이 평지가 아니고 언덕진 꽃밭인데, 저희 같은 건축가들은 그건 그거대로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혼자 마당에 나와 책을 읽고 가면서 여기에 집을 지으면 어떻게 지을 수 있을지, 그런 상상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Q. 그래도 서울에서 정읍으로 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정읍에서의 삶을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에서 살 때는 아내가 혼자 육아를 하고 저는 출퇴근을 하면서 일을 해왔거든요. 밤새며 일하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아내가 육아를 거의 혼자 하며 많이 힘들어했죠. 지금은 제가 육아에 시간을 내면서 아내의 힘듦을 이해하게 됐지만, 그때만 해도 상황이 얼마만큼 힘든지 잘 몰랐어요. 일과 삶의 균형을 거의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회사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물론 사는 곳을 정읍으로 옮기고 싶어졌어요.



정읍에서의 첫 프로젝트, 삶의 터전이 된 '큰돌집'



“가족이 사는 집을 직접 짓는 게 우리 꿈이었어요. 그 꿈을 당겨서 이뤄볼까 했죠.”


Q. 정읍으로 갈 이유들이 차곡차곡 쌓여온 거네요. 결국 회사로부터 독립하면서 사는 곳도 정읍으로 옮기셨고요. 옮겨운 초반에는 상황이 어땠나요? 

정읍에 왔을 때 바로 일적으로 독립한 건 아니었어요. 제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독립을 안 한 상황에서 저에게 건축일을 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죠. “그러면 내가 사는 집을 내가 만들어야지.” 이 생각으로 정읍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을 만들기로 했어요. 아내도 자기 공간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언젠가 가족이 사는 집을 직접 짓는 게 우리 꿈이었거든요. 그러면 그 꿈을 좀 당겨서 이뤄볼까 했던 거죠. 그렇게 저의 첫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Q. 집의 이름이 ‘큰돌집’인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크기가 작아도 공간 자체가 잘 나눠져 있어요. ‘따로 또 같이의 느낌’으로 개인공간이 있지만 각 공간 안에서 누가 뭘 하는지 잘 보이죠. 지하로 내려간 집이라 내부가 어두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두 개의 마당을 만들어 채광문제를 해결하고 바깥 풍경과 집이 어우러지게 만든 점도 신기했어요. 직접 살 사람이면서 동시에 건축가이시니까, 본인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건축물을 만든 과정이 즐거웠을 듯해요.

제가 원하는 바를 100%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일을 만든거죠.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관리하면서 설계도 해야 했고요. 설계사와 시공사, 건축주의 입장까지 다 섞였는데 정말 괴로웠어요(웃음). 일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내일 공정과 비용 계산을 하느라 예민해져 있었고, 설계사의 입장에서 퀄리티를 포기 못하고.. 저희가 사는 집을 만드는 거였지만 혼자 하다 보니 처음에는 내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거 같아요. 


Q. 고생스러운 기억으로 말씀하셨지만 큰돌집은 여러 곳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21회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아름다운건축물 ‘일반' 부문에서 수상한 데다가 EBS 건축탐구 - 집에도 소개됐죠. 가족들에게 좋은 집이자 건축가인 스스로에게도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든 셈인데, 이 프로젝트를 해낸 이후의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첫 프로젝트가 정읍에서 이뤄진 이후의 변화를 들자면, 일단 제가 하는 일의 방식이 달라졌어요. 회사에서 독립한 후 친구와 둘이 공동대표 형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됐어요. 그 친구는 서울에 있고 저는 재택근무 형식으로 정읍에서 일해요.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중간지점에서 만나 일 관련 협의를 하고, 조금 더 어려운 일을 할 때는 제가 그 친구 집에 가서 일주일 정도 합숙을 하는 식입니다.



정읍살이가 보여준 일과 삶의 양립 가능성



“시간과 공간이동, 이런 것들을 제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으면 충분해요.” 


Q. 일하는 곳으로 갈 때 이동시간이 길어져서 불편하지 않으세요?

지금 제가 정읍집에서 서울에 가는 시간, 그리고 서울에 살때 집에서 직장으로 가는 시간은 시간을 놓고 보면 거의 같아요. 서울에서 살 때 직장을 갈 때도 한 시간 반 정도 걸렸거든요. 퇴근이 늦으니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곤 했어요. 그 택시들이 대부분 빠르게 운전하는 터라 너무 위험했고 그런 일상이 거의 매일이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KTX를 타고 가는 게 훨씬 편해요. 한번 이동할 때의 비용이 크긴 하지만 이동 횟수가 적으니 훨씬 낫죠.


Q. 정읍에 살면서 일이나 문화에 대한 인프라에서 아쉬운 순간은 없나요? 예를 들면 파주 출판단지나 판교 등은 업무적인 인프라가 같이 엮어져 시너지 나는 부분을 염두에 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읍으로 내려오기 전에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일적인 인프라도 있지만 저희 둘 다 문화적인 인프라를 좋아하는데 우리가 이걸 놓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죠. 일단 일적으로는 건축 설계 사무실들끼리 몰려 있을 이유는 전혀 없어요. 전기나 기계 같은 협력업체들이 이웃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대부분 전화통화로 일을 처리하지 직접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아요. 

문화적인 인프라에 대해 생각하면, 요즘은 관심만 있으면 SNS에서 충분히 정보를 받아요. 관광객 입장에서 서울을 가는 경험이 훨씬 더 좋기도 하고, 지방에서 하는 행사들은 접근하기가 예전보다 편하고요. 서울에서 살았다고 문화 인프라를 다 누리지는 못했어요. 일 외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휴식을 챙겨가면서 문화적인 것까지 누리기에는 여유가 없었어요.


Q.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지금의 업무형태에 만족하시는 게 느껴져요. 계속 고민해오던 일과 생활의 양립도 해내시는 것 같고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일과 휴식이 뒤섞여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일 관련 전화를 받는데 아이가 다가오기도 하고, 주말에 가족끼리 놀러갔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계속 업무 전화가 오기도 하고요. 그래도 기회비용을 따지면 제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을 갖는 게 훨씬 중요해요. 최근 제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런 김에 동업하는 친구와 사무실을 만들기로 했어요. 친구와 제가 사는 곳의 중간인 공주 쪽에 사무실 공사를 하는 중이죠. 완공하면 그쪽으로 일주일에 3~4번 출근하게 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저에게는 시간적인 부분과 공간 이동적인 부분, 이런 것들을 제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으면 충분해요. 



정읍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삶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네'라고 말하고 싶어요.”

 

Q. 3년 동안의 정읍살이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만족하는 부분도 좀더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거 같아요.

정읍에 살면서 몸은 물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건강해졌어요. 일상에 여유가 생기니 운동할 시간도 생기고요. 큰 도시에서 살 때는 일의 강도나 삶의 속도를 남에게 맞춰야 할 것 같았거든요. 아내나 저나 심지가 굳은 사람들은 아닌데, 아이가 커가고 정읍에 내려와 살면서 그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좀더 찾아낸 듯해요. 지금 우리 가족의 삶이 한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일궈낸 거예요. 지금으로썬 정읍에서 살면서 아이의 또래 친구들이 적은 게 좀 걸리지만, 가족이 마당 있는 집에 살고 가까이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잖아요. 마을에 아기가 하나밖에 없으니 이웃에 사는 이모들이 아이를 예뻐해주시고요.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Q. 직업이 직업인 만큼 정읍에 살면서 눈에 들어온 건축물도 있었을 텐데요. 정읍에서 구경할 만한 건축물을 발견했다면 추천해주세요.

현대 건축은 정읍시립미술관이요. 미술관 근처에 있는 아양사랑숲 놀이터도 매우 독특해서 기억에 남아요. 놀이공간을 굉장히 모험심 있게 구성해놓았거든요. 안전하기만 한 놀이터는 아이들도 재미없어 한다고 봐요. 옛 건축 중에는 김명관 고택(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이 있어요. 전형적인 고택의 형태라기 보다, 보면 볼 수록 당대의 다른 집과는 조금씩 다른 디테일이 나와요. 제 표현으로는 관찰자로서 읽어낼 텍스트가 굉장히 많은 데에요. 건축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고, 얘기를 재밌게 하는 분이 어린 친구들 혹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Q. 사는 사람이자 건축일을 하는 사람의 눈으로 발견한 정읍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어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여쭤보려 해요. 지금 삶의 방식으로 정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어떤 건지도 듣고 싶어요.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네'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울 집을 청산할 때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현재의 삶에 만족해요. 일적인 부분에서도 지금 같은 형태의 일하기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고요. 최근에 태어난 둘째아이를 포함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살 수 있으니 좋겠지요. 일적인 면에서는 정읍에서 좋은 공간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읍 시내에 좋은 건물을 하나 정도 만들어보는 일. 그런 부분이 제가 정읍에서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SNS: 비티비 건축사무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tb_jeongeup/

참고: EBS 건축탐구 집: 내 생애 최고의 선물 https://www.youtube.com/watch?v=fICjUFM-AdU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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