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생활 에세이]는 작가가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동네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동네에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동네와 새롭게 관계 맺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 무과수
지금 살고 있는 아현동에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부산 토박이가 서울에 올라와서 ‘나의 동네'라고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정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았다. 떠나는 게 자의가 아니라 대부분 타의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네에 오게 된 것은, 지금의 동네 이웃인 ‘안나'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동네를 잘 알게 된 것은 안나와 무작정 산책하면서부터였다. 안나는 나에게 종종 뜬금없이 연락해서 같이 걷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단 그녀를 따라나섰다.
집에서 서울역이나 남산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 서울 전경이 내다보이는 공원에 앉아 몰래 챙겨 온 흑맥주를 꺼내 나눠 마시고, 어느 몹시 추운 겨울 아침에 집에서 덕수궁까지 걸어가서 아무도 없는 궁을 거닐던 추억도 있다. 별일 없으면 거의 온종일 걷고 또 걷는다 (4시간 이상 걸었던 적도 있다).
출퇴근할 때 항상 걷던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새롭고 낯선 기분이 든다. 동네를 구석구석 누비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보이던 ‘파파브레드'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빵 가게였고, 매번 지나가면서 항상 사람이 많아 눈여겨보던 곳은 알고 보니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맛집이었다. 프랜차이즈점이지만 맛이 훌륭한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분식점도 있고, 날이 추워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붕어빵과 땅콩과자는 겨울 내 훌륭한 간식이 되어준다.
우울하거나 나를 위한 식사를 하고 싶은 날에는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의 작은 스시집으로 간다. 일렬로 6석 정도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추천 초밥과 하이볼 한 잔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올라가면 동네 카페인 ‘kafe on’이 나오는데, 지난여름에는 카페 사장님과 안나님 이렇게 셋이서 매주 화요일 함께 모여 해질 녘을 보며 요가를 했었다. 요가를 마친 뒤 영업을 종료한 카페에서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었다(최근에는 동네 주민 찬스로 생일 선물로 커피 한 잔 부여받았다)
장을 보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인데, 가게마다 특징이 달라서 필요한 것에 따라 그에 맞는 가게를 방문한다. 없는 거 빼고 다 파는 대형 마트, 유기농 재료를 살 수 있어 자주 가는 생협, 조금 제철 채소를 구매하고 싶으면 상회, 맛있는 과일은 아현 시장 옆 작은 과일 가게 등 자주 다니다 보면 장단점을 알게 되고 장을 보는 스킬이 늘어난다.
이에 대한 정보는 동네 이웃 안나와 공유하는데, 서로 재료가 남으면 교환하기도 하고 우리는 자주 밥을 함께 먹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규칙 아닌 규칙은 애쓰지 않는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식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더 부담 없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동네라 부르는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면 이웃 동네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곳도 동네라 여긴다. 훨씬 선택지도 늘어나기 때문에 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걸으면서 동네를 확장한다. 그리고 자주 걷다 보면 동네별 루틴도 생겨난다.
1) 충정로역을 지나 서울로를 통해 서울역 혹은 남산으로 가는 길은 가장 애용하고 좋아하는 코스.
2) 이대는 ‘원즈오운’에서 브런치를 먹고, 그 옆 식물 가게 ‘사사막'을 구경하고, 걸어서 이화여대 뒷골목을 누비다 ‘고스트 요거트’에서 요거트를 구매하는 코스.
3) 서촌은 서울 경찰청 옆길을 시작으로 걷다가, 광화문 포비에서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사고 그 옆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구경하다 집으로 오는 코스.
이렇듯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도 이제는 지도를 보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동네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올라갔다. 단순히 내가 어디 지역에 어떤 집에 사느냐가 아닌,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항상 다른 동네를 쏘다니기 바빴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동네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동네를 알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추억과 함께 그리움도 쌓여간다. 이곳은 언젠가는 없어질 재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이렇게 잘 누리며 살다 보면, 분명 아쉬움이 아닌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 무과수
필명 무과수는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독립출판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 <집다운 집>, <인디펜던트 워커> 등을 펴냈으며,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직업을 갖고 싶어 일과 딴짓의 경계를 허물고 버무려지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동네생활 에세이]는 작가가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동네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동네에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동네와 새롭게 관계 맺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 무과수
지금 살고 있는 아현동에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부산 토박이가 서울에 올라와서 ‘나의 동네'라고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정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았다. 떠나는 게 자의가 아니라 대부분 타의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네에 오게 된 것은, 지금의 동네 이웃인 ‘안나'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동네를 잘 알게 된 것은 안나와 무작정 산책하면서부터였다. 안나는 나에게 종종 뜬금없이 연락해서 같이 걷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단 그녀를 따라나섰다.
집에서 서울역이나 남산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 서울 전경이 내다보이는 공원에 앉아 몰래 챙겨 온 흑맥주를 꺼내 나눠 마시고, 어느 몹시 추운 겨울 아침에 집에서 덕수궁까지 걸어가서 아무도 없는 궁을 거닐던 추억도 있다. 별일 없으면 거의 온종일 걷고 또 걷는다 (4시간 이상 걸었던 적도 있다).
출퇴근할 때 항상 걷던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새롭고 낯선 기분이 든다. 동네를 구석구석 누비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하게 보이던 ‘파파브레드'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빵 가게였고, 매번 지나가면서 항상 사람이 많아 눈여겨보던 곳은 알고 보니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맛집이었다. 프랜차이즈점이지만 맛이 훌륭한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분식점도 있고, 날이 추워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붕어빵과 땅콩과자는 겨울 내 훌륭한 간식이 되어준다.
우울하거나 나를 위한 식사를 하고 싶은 날에는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의 작은 스시집으로 간다. 일렬로 6석 정도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추천 초밥과 하이볼 한 잔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올라가면 동네 카페인 ‘kafe on’이 나오는데, 지난여름에는 카페 사장님과 안나님 이렇게 셋이서 매주 화요일 함께 모여 해질 녘을 보며 요가를 했었다. 요가를 마친 뒤 영업을 종료한 카페에서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호사도 누렸었다(최근에는 동네 주민 찬스로 생일 선물로 커피 한 잔 부여받았다)
장을 보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인데, 가게마다 특징이 달라서 필요한 것에 따라 그에 맞는 가게를 방문한다. 없는 거 빼고 다 파는 대형 마트, 유기농 재료를 살 수 있어 자주 가는 생협, 조금 제철 채소를 구매하고 싶으면 상회, 맛있는 과일은 아현 시장 옆 작은 과일 가게 등 자주 다니다 보면 장단점을 알게 되고 장을 보는 스킬이 늘어난다.
이에 대한 정보는 동네 이웃 안나와 공유하는데, 서로 재료가 남으면 교환하기도 하고 우리는 자주 밥을 함께 먹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규칙 아닌 규칙은 애쓰지 않는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식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더 부담 없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동네라 부르는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면 이웃 동네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곳도 동네라 여긴다. 훨씬 선택지도 늘어나기 때문에 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걸으면서 동네를 확장한다. 그리고 자주 걷다 보면 동네별 루틴도 생겨난다.
1) 충정로역을 지나 서울로를 통해 서울역 혹은 남산으로 가는 길은 가장 애용하고 좋아하는 코스.
2) 이대는 ‘원즈오운’에서 브런치를 먹고, 그 옆 식물 가게 ‘사사막'을 구경하고, 걸어서 이화여대 뒷골목을 누비다 ‘고스트 요거트’에서 요거트를 구매하는 코스.
3) 서촌은 서울 경찰청 옆길을 시작으로 걷다가, 광화문 포비에서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사고 그 옆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구경하다 집으로 오는 코스.
이렇듯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도 이제는 지도를 보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동네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올라갔다. 단순히 내가 어디 지역에 어떤 집에 사느냐가 아닌,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항상 다른 동네를 쏘다니기 바빴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동네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동네를 알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추억과 함께 그리움도 쌓여간다. 이곳은 언젠가는 없어질 재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이렇게 잘 누리며 살다 보면, 분명 아쉬움이 아닌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 무과수
필명 무과수는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독립출판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 <집다운 집>, <인디펜던트 워커> 등을 펴냈으며,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직업을 갖고 싶어 일과 딴짓의 경계를 허물고 버무려지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