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통해 타인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이 만드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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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정읍 원도심에 소담한 간판과 함께 은은한 차 향이 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각자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차, 손에 쥐는 것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다기들. 차를 우려 주는 사람과 차를 마시는 사람이 탁자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차에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나 봅니다. 차를 마시며 그 향기만큼 그윽하고 넉넉한 사람들을 만나는 곳. 차샘 정읍입니다.



고향에서 이방인이 되다

"차가 있으면 모르는 사람과도 풍성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정읍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에 돌아오셨어요. 정읍에서 차를 다루는 공간인 ‘차샘'을 열었고요. 고향에 돌아와 찻집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20년 동안 은행에서 일했어요. 차는 사회생활을 한 지 13년 차 됐을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했고요. 지인들과 모르는 사람 몇 명이 껴서 인사동에서 같이 차를 마셨는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랄까요. 그 느낌이 무척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은행원 생활을 정리하고 인사동에서 2년 정도 찻집을 운영했는데, 시간이 깊어지니 고향인 정읍에서 차를 마시고 차 문화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 매장을 정리하고 정읍에 내려왔어요. 전남 지역에서 차 문화축제를 기획 운영하기도 했고요. 지금의 공간을 연 건 4년 정도 됐어요. 어느덧 정읍살이 9년 차가 되었네요. 고향에 다시 와서 일까요. 가끔은 제 자신이 막 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다시 돌아온 곳인 만큼, 정읍을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일단 정읍은 거의 변화가 없어요. 서울에 갔다가 정읍에 돌아오기까지 30년 정도의 간극이 있는데, 도시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부담이 있었어요. 저는 매년 제 집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제가 이방인이더라고요. 떠난 사람이었던 거죠.


어떻게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하셨어요?

차를 마실 때는 항상 누군가와 마주 앉잖아요. 차를 통해 모르는 사람과도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을 아니까, 정읍에 와서 이방인으로 대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과 인사하고 차를 마셨어요.


차샘 운영 외에도 정읍/고창에서 기자로 활동하거나 친환경 농사도 준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힘에 부치지는 않으세요?

정읍에서는 일의 템포가 서울과 달라요.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고 달리 말하면 좀 느려요.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의 감각과는 완전히 다르죠. 가령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당장 내일 답이 나와야 하잖아요. 여기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어요.



차의 매력

"같은 품종이고 같은 시기에 재배되더라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차와의 만남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주었잖아요. 차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차는 첨가물 없이 찻잎만으로 다양한 맛이 만들어져요. 녹차, 홍차, 백차, 청차, 황차, 흑차 등등. 이런 차들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청량한 맛에서부터 오래된 진향까지 폭넓은 맛을 보여주거든요. 게다가 차에는 5천 년이라는 긴 역사가 있어요. 차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레 차에 얽힌 사람과 역사, 사상을 접하게 되죠. 인문학 주제로도 손색 없어요.



차샘에서 취급하는 차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한국 차는 녹차와 발효차, 꽃차 등 정읍이나 하동, 고성에서 나는 차도 놓아두었어요. 여기에 녹차, 황차, 백차, 흑차, 청차, 홍차로 구성된 중국의 6대 다류도 취급해요.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다기도 다루고요. 


한국 차만의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중국 차가 대규모로 만들어진다면 한국 차는 소규모로 만들어져요. 그 만의 매력이 있어요. 한국 녹차의 한 종류인 '우전'만 해도 제대로 마시면 온 몸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같은 녹차이고 같은 시기에 재배되어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고요. 그동안은 단일 차종의 순수한 맛을 고집해왔다면,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블랜딩 차를 시도해보고 있는 단계예요.




차와 사람이 어울리는 일상

"차를 통해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차샘에서 보내는 대표님의 일상은 어떤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에 출근해요. 누나와 함께 가게를 보는데 제가 다른 지역 일로 바쁘면 누나가 더 오래 가게를 보는 날도 있어요. 그렇게 일과 시간 이후 저녁을 먹고 다시 가게로 돌아와 9시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자정까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허다해요. 



차샘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대부분 정읍 분들이 찾아오세요. 한 달에 두어 번 외지의 지인들이 방문하기도 하고요. 단골 분 중에 팔순 가량의 동네 할머니가 계세요. 친구분들과 매일같이 와서 차 한잔 하며 놀다 가시죠. 그분들 덕에 가게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차를 우리면 초면이라도 함께 어울려 차를 마시게 되니까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차로 사람을 만나면서 정읍에서 차 문화로 소통을 시도하신다고 느껴요. 이에 대해 정읍 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궁금하고요.

일단 마시면 좋다고 말씀해주세요. 근데 자신의 생활 속에서 차를 즐기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좀 먼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더 잘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차와 관련해 차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모임도 있나요?

일단 누구나 오면 차를 시음할 수 있어요. 차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위해 매주 화요일 오전 강좌를 열고 있기도 하고요. 올해부터는 전북과학대 평생교육원에서 '차와 인문학' 강좌를 운영해요. 방학 때는 학교가 아닌 차샘에서 해당 강좌를 진행하고요.





정읍과 차샘이 어우러지는 상상

"차샘을 사람의 다양한 공상이 조립되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정읍에서의 경험이 풍성해질수록 지역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실 것 같아요. 정읍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정읍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문제는 농촌이 도시보다 빠르게 쇠락하고 있다는 거죠. 한쪽이 기울어지면 다른 쪽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안게 될 거예요. 정읍에는 자연환경과 농업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어요. 그 자산을 살릴 방법을 찾는 게 지금의 할 일일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정읍의 매력이 있나요?

저의 경우 정읍에서 길을 갈 때 하늘을 보기 위해 멈추곤 해요. 들판을 보기 위해, 꽃을 보기 위해 멈추는 잠깐의 순간이 삶을 여유롭고 즐겁게 해주죠. 이 외에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읍의 유명한 장소에 가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가을 단풍이 유명한 내장산의 설경이라던가, 여름 구절초 공원의 싱그러운 향기 같은 것들을요.


차샘이라는 공간을 지키며, 정읍을 살피는 대표님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네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차샘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사람이 서로 만나 문화를 이루고, 이야기를 통해 새롭고 즐거운 생활을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차 판매점에 그치기보다는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를 꿈꿔요.

이밖에는 지역의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기사를 쓰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날 거고요. 올해부터 영화 관련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영화로 만드는 이야기에도 정읍을 배경으로 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싶어요. 결국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일 듯하네요.




차샘정읍 정보

찾아오는 길 | 전북 정읍시 초산로 96-1

*매일 10:00 ~ 21:00 (일요일 휴무)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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