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맛있게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샘고을 시장의 지척에는 탁 트인 정읍천이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그 밖의 계절에도 푸른 나무와 맑은 강이 정읍 사람들을 고르게 품어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정읍 특산물인 한우와 귀리, 토마토로 품격 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 브랜드, 레스토랑 22가 문을 열었습니다. 로컬 브랜드 조인정읍에서 오픈한 공유가게인데요. 가게 안에 들어서면 각종 와인과 오가닉 식재료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읍의 식재료로 만든 유러피안 메뉴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의 자연경관을 담은 사진작가의 작품 또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미각을 포함한 오감을 만족시키려는, 의식주 기반의 복합 문화 공간을 기획 운영하는 Building 22의 시도이지요.
정읍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공유가게 1호에서는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정읍 식재료를 기반으로 즐거운 음식문화를 제안하는 곳, 레스토랑 22에 대해 정희진 푸드 디렉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컬로서의 매력이 풍부한 정읍
"숨어 있는 로컬 문화를 끄집어내 활성화시키지는 취지예요"
조인정읍 공유가게 1호인 레스토랑 22는 정희진 푸드 디렉터님을 포함해 각기 전문분야가 다른 구성원들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F&B(Food & Beverage) 쪽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해왔어요. 그러다 의식주 공간을 기획하고 브랜드를 만들고자 주식회사 Building 22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신규 브랜드를 만들면 더 큰 일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함께 했어요. Building 22에서 저는 F&B와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해외 리테일 전문가와 가구 제조 회사 운영자, 인테리어 건축을 하는 디자이너 한 명을 포함해 총 4명의 주주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됐어요. 조인정읍에서 저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레스토랑이다 보니 F&B에 비중이 집중돼 있어서, 제가 주로 인터뷰 같은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요.
시너지 나는 사업분야가 잘 연결된 팀이네요. 공유가게에 입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5, 6년 전 그래놀라 관련 사업을 할 때 원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정읍을 알게 됐어요. 그래놀라의 주원료가 귀리인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귀리를 재배하는 곳이 정읍이었거든요. 정읍 귀리를 재료로 한 레시피로 로컬 에디션 식품을 만들었고, 그때 처음 정읍에 좋은 곡물 자원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이후에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해왔고요. 정읍의 곡물을 활용해 레스토랑을 열어보고 싶었는데, 언더독스와의 기회가 닿아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정읍이라는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만큼, 뚜렷하게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정읍의 매력 요소를 많이 찾고 싶어요. 원도심 거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PB상품을 만들고, 숨어 있는 로컬 문화를 끄집어내서 좀 더 활성화시키고 싶거든요. 저희 팀은 PB상품을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데 강하기 때문에 정읍의 풍부한 식재료인 곡류로 시리얼을 만들 수 있을 거고요. 정읍의 잼을 예쁘게 라벨링해 전국 마켓에 유통해보고 싶기도 해요. 정읍에 블루베리나 오미자, 복분자 같은 베리류가 풍부하고 잼을 만드는 분들이 많은데 잘 안 알려져 있거든요.
이번에 열리는 공유가게 1호인 ‘레스토랑 22’는 어떤 공간인가요? 공간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염두에 뒀는지도 궁금해요.
레스토랑 22는 정읍의 로컬 식재료에 기반한 ‘프리미엄 그로서리 마켓’을 컨셉으로 하고 있어요. 여기서 프리미엄은 비싸다기보다는 가장 좋은 로컬 유기농을 사용했다는 의미죠. 저희가 직접 큐레이션한 농산물과 해외 식료품들을 놓아두었고, 벽면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사진작품이 전시돼 있어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에요. 이런 공간을 통해 정읍을 센스 있게 표현해서 관광객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정읍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읍에 이런 게 생겼어?" 라며 찾아올 수 있도록 했어요.
chapter 2. 지역 식재료가 선사하는 맛
"재료 본연의 맛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로서리 마켓'은 정읍에 처음 생기는 것 같아요.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매장 입구에 놓인 바구니를 들고 원하는 물건을 고르면 돼요. 예를 들어 술을 골라 그대로 포장해 가셔도 되고, 계산한 후에 이 매장에서 먹어도 되고요. 쇼핑도 하면서 푸드코트 느낌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거죠. 매장에서 음식을 먹는 분들에게는 저희가 예쁘게 케이터링 서비스도 해드리고, 음식 메뉴도 시킬 수 있게 준비해두었어요.
주문할 수 있는 메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귀리로 만든 리조또와 토마토소스를 활용한 파스타, 한우를 이용한 크림 파스타가 있어요. 정읍 식재료를 유러피안 요리로 풀어낸 건데, 메뉴 이름을 ‘덮밥' ‘파스타면'처럼 쉽게 지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맛있게 먹도록 한국인 입맛에 많이 맞췄죠. 정읍 대파나 마늘 같은 재료도 풍부하게 활용했어요.
덮밥이나 파스타 같은 레시피에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하면 맛이 달라지나요?
표현되는 맛이 좀 달라요. 토마토의 경우도 가공품을 사용하면 늘 같은 맛을 낼 수 있지만 식재료는 지역뿐만 아니라 제작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거든요. 무엇보다 식재료가 화물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생명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내 몸에 넣었을 때 더더욱 영양분이 줄어들어요. 근데 정읍에서는 식재료 생산지가 가까우니까 이동 거리가 짧고 더 신선하게 먹을 수 있죠.
생산지가 가깝다는 데서 오는 이점이 크네요.
네. 재료 자체는 한국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재료지만요. 누구나 시장 가서 사 오는 재료로 유럽 스타일의 다이닝을 해보자는 게 이 공유가게의 컨셉이었어요. 레스토랑 22 셰프님에게, 될 수 있으면 계절의 변화를 다 느낄 수 있게끔 소금이나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가장 본연의 맛을 살린 과일이나 채소 섭취를 맛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만든 저희의 음식이 뭔가 트렌디한 맛은 아닐 수 있지만 대신 질리지 않는 맛이라 말하고 싶어요.
아까 어르신 분들의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가게에 지역 어르신들이 종종 찾아오시나요?
평일 저녁에 커피 한 잔, 물 한잔 마시러 오는 분들은 주로 가게 주변의 고령층 분들이에요. 저희 매장 옆의 농약사 사장님은 본인 손님이 오시면 저희 가게에서 커피를 대접하고요. 건물주 분들도 매일 간식을 가져다주시거나 과일을 사면 꼭 몇 개씩 나눠서 주시고, 이곳 메뉴 중 크림 리조또를 제일 좋아해서 그것도 많이 드시러 오세요. 음식을 사드시면서 본인이 지금껏 이 지역에서 어떤 요리를 해왔는지 이야기해주는 분도 계시고요.
예를 들면 어떤 요리일까요?
단술을 만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쌀을 가공하고 발효시켜서 요거트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통술을 만드시는 거예요. 어르신들마다 자기들만의 노하우가 있고 지역마다 특유의 요리방법이 있어서 어르신들의 팝업스토어 같은 걸 해도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런 시도를 안 하면 로컬푸드의 건강한 전통 제조방식이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질 수 있잖아요.
어르신들 외에 레스토랑 22를 접하는 다른 정읍 사람들 반응도 궁금해지네요.
일단 들어와 사진을 찍으시고는 “정읍에 이런 게 생겼어요?”하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세요. 직접 전화해서는 “정읍천 쪽에 생긴 게 맞냐”고 매장 위치를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로컬에서 일하는 행복
"주위에 항상 웃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희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읍에 직접 내려와 사람과 지역을 경험해보니 어떠세요?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에 되려 신선하게 볼 수 있는 정읍의 매력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직원들과 정읍에서 조그마한 아파트를 얻어 같이 살고 있어요. 주말에 직원들과 내장산의 캠핑장을 갔는데 그곳 밤하늘의 은하수 풍경이 참 좋더라고요. 자연을 보고 정읍을 사랑하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많이 못 가는 상황이잖아요. 국내에서 차박이나 캠핑 같은 방식으로 숨은 여행지를 찾은 젊은이들이 많은데, 정읍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여행지예요. 문화적으로도 좋은 콘텐츠가 될 자원이 많은데 정읍의 젊은 층이 감소하면서 매력 요소를 알릴 사람들이 줄어 아쉬워요.
로컬 자체를 매력적으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로컬마다 다니다 보면 마치 MBTI처럼 나랑 맞는 도시가 있고 안 맞는 도시가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로컬에는 약간 그런 매력이 있어서, 기분에 따라 옮겨가면서 그 지역의 매력을 다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읍에 왔는데 너무 아름답고 좋거든요. 근데 이런 도시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무척 아쉽죠.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계속 일하면서 생존력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내려와 사업적인 틀을 잡아야겠죠. 그래서 저희가 운영하는 공유가게 1호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정읍의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청담, 압구정, 성수 같은 도심에서 매장을 운영하셨잖아요? 서울 지역에서의 매장 운영과 정읍에서의 매장 운영은 온도가 많이 다르겠네요.
서울에서 특히 강남과 성수는 막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라면, 정읍은 좀 달라요. 보통은 짧은 기간 안에 프로젝트를 하면 직원 중 한 명은 꼭 번아웃이 오는데요. 정읍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약간 여행 온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몸은 힘든데 공기가 너무 좋고 별이 쏟아지는 자연환경에 있으니 힘든 게 다 풀리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마음의 여유가 저절로 생겨요. 교통 체증이 없어서 그런지 생활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고요.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분들이 주위에 있다는 거예요. 주위에 친절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희들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스몰 글라스 푸드 디렉터로 와인문화와 푸드 콘텐츠를 확산하고 있는 정희진 디렉터
✱ 정희진 디렉터가 최근 푸드 스타일링을 맡은 성수동 스몰 글라스
지금 이 공유가게는 6개월 동안의 짧은 시도인 거잖아요? 그럼에도 정읍의 매력에 푹 빠지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후의 스탭도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생각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저희가 건물을 알아보고 계속 정착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묻고 싶어요. 레스토랑22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일단 메뉴를 세분화해서 좀 더 저희를 알릴 수 있는 재료를 찾아낼 거고요. 정읍의 재료를 바탕으로 가공 PB상품을 만들려고 해요. 정읍의 청년들에게 직원 교육을 하는 것도 목표예요. 여기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나도 이 지역에서 뭔가를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코로나 이후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보상심리 때문에 음식 소비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 브랜드가 정읍의 농산물로 좋은 음식이 있는 삶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레스토랑 22가 사람들에게 그런 곳으로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레스토랑 22 정보
찾아오는 길 | 전북 정읍시 벚꽃로 374 1층
이용방법 | 인스타그램으로 확인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
"음식을 맛있게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샘고을 시장의 지척에는 탁 트인 정읍천이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그 밖의 계절에도 푸른 나무와 맑은 강이 정읍 사람들을 고르게 품어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정읍 특산물인 한우와 귀리, 토마토로 품격 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파인 다이닝 브랜드, 레스토랑 22가 문을 열었습니다. 로컬 브랜드 조인정읍에서 오픈한 공유가게인데요. 가게 안에 들어서면 각종 와인과 오가닉 식재료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읍의 식재료로 만든 유러피안 메뉴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의 자연경관을 담은 사진작가의 작품 또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미각을 포함한 오감을 만족시키려는, 의식주 기반의 복합 문화 공간을 기획 운영하는 Building 22의 시도이지요.
정읍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공유가게 1호에서는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정읍 식재료를 기반으로 즐거운 음식문화를 제안하는 곳, 레스토랑 22에 대해 정희진 푸드 디렉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컬로서의 매력이 풍부한 정읍
"숨어 있는 로컬 문화를 끄집어내 활성화시키지는 취지예요"
조인정읍 공유가게 1호인 레스토랑 22는 정희진 푸드 디렉터님을 포함해 각기 전문분야가 다른 구성원들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F&B(Food & Beverage) 쪽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해왔어요. 그러다 의식주 공간을 기획하고 브랜드를 만들고자 주식회사 Building 22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신규 브랜드를 만들면 더 큰 일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함께 했어요. Building 22에서 저는 F&B와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해외 리테일 전문가와 가구 제조 회사 운영자, 인테리어 건축을 하는 디자이너 한 명을 포함해 총 4명의 주주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됐어요. 조인정읍에서 저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레스토랑이다 보니 F&B에 비중이 집중돼 있어서, 제가 주로 인터뷰 같은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요.
시너지 나는 사업분야가 잘 연결된 팀이네요. 공유가게에 입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5, 6년 전 그래놀라 관련 사업을 할 때 원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정읍을 알게 됐어요. 그래놀라의 주원료가 귀리인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귀리를 재배하는 곳이 정읍이었거든요. 정읍 귀리를 재료로 한 레시피로 로컬 에디션 식품을 만들었고, 그때 처음 정읍에 좋은 곡물 자원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이후에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해왔고요. 정읍의 곡물을 활용해 레스토랑을 열어보고 싶었는데, 언더독스와의 기회가 닿아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정읍이라는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만큼, 뚜렷하게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정읍의 매력 요소를 많이 찾고 싶어요. 원도심 거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PB상품을 만들고, 숨어 있는 로컬 문화를 끄집어내서 좀 더 활성화시키고 싶거든요. 저희 팀은 PB상품을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데 강하기 때문에 정읍의 풍부한 식재료인 곡류로 시리얼을 만들 수 있을 거고요. 정읍의 잼을 예쁘게 라벨링해 전국 마켓에 유통해보고 싶기도 해요. 정읍에 블루베리나 오미자, 복분자 같은 베리류가 풍부하고 잼을 만드는 분들이 많은데 잘 안 알려져 있거든요.
이번에 열리는 공유가게 1호인 ‘레스토랑 22’는 어떤 공간인가요? 공간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염두에 뒀는지도 궁금해요.
레스토랑 22는 정읍의 로컬 식재료에 기반한 ‘프리미엄 그로서리 마켓’을 컨셉으로 하고 있어요. 여기서 프리미엄은 비싸다기보다는 가장 좋은 로컬 유기농을 사용했다는 의미죠. 저희가 직접 큐레이션한 농산물과 해외 식료품들을 놓아두었고, 벽면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사진작품이 전시돼 있어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에요. 이런 공간을 통해 정읍을 센스 있게 표현해서 관광객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정읍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읍에 이런 게 생겼어?" 라며 찾아올 수 있도록 했어요.
chapter 2. 지역 식재료가 선사하는 맛
"재료 본연의 맛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로서리 마켓'은 정읍에 처음 생기는 것 같아요.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매장 입구에 놓인 바구니를 들고 원하는 물건을 고르면 돼요. 예를 들어 술을 골라 그대로 포장해 가셔도 되고, 계산한 후에 이 매장에서 먹어도 되고요. 쇼핑도 하면서 푸드코트 느낌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거죠. 매장에서 음식을 먹는 분들에게는 저희가 예쁘게 케이터링 서비스도 해드리고, 음식 메뉴도 시킬 수 있게 준비해두었어요.
주문할 수 있는 메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귀리로 만든 리조또와 토마토소스를 활용한 파스타, 한우를 이용한 크림 파스타가 있어요. 정읍 식재료를 유러피안 요리로 풀어낸 건데, 메뉴 이름을 ‘덮밥' ‘파스타면'처럼 쉽게 지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맛있게 먹도록 한국인 입맛에 많이 맞췄죠. 정읍 대파나 마늘 같은 재료도 풍부하게 활용했어요.
덮밥이나 파스타 같은 레시피에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하면 맛이 달라지나요?
표현되는 맛이 좀 달라요. 토마토의 경우도 가공품을 사용하면 늘 같은 맛을 낼 수 있지만 식재료는 지역뿐만 아니라 제작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거든요. 무엇보다 식재료가 화물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생명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내 몸에 넣었을 때 더더욱 영양분이 줄어들어요. 근데 정읍에서는 식재료 생산지가 가까우니까 이동 거리가 짧고 더 신선하게 먹을 수 있죠.
생산지가 가깝다는 데서 오는 이점이 크네요.
네. 재료 자체는 한국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재료지만요. 누구나 시장 가서 사 오는 재료로 유럽 스타일의 다이닝을 해보자는 게 이 공유가게의 컨셉이었어요. 레스토랑 22 셰프님에게, 될 수 있으면 계절의 변화를 다 느낄 수 있게끔 소금이나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가장 본연의 맛을 살린 과일이나 채소 섭취를 맛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만든 저희의 음식이 뭔가 트렌디한 맛은 아닐 수 있지만 대신 질리지 않는 맛이라 말하고 싶어요.
아까 어르신 분들의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가게에 지역 어르신들이 종종 찾아오시나요?
평일 저녁에 커피 한 잔, 물 한잔 마시러 오는 분들은 주로 가게 주변의 고령층 분들이에요. 저희 매장 옆의 농약사 사장님은 본인 손님이 오시면 저희 가게에서 커피를 대접하고요. 건물주 분들도 매일 간식을 가져다주시거나 과일을 사면 꼭 몇 개씩 나눠서 주시고, 이곳 메뉴 중 크림 리조또를 제일 좋아해서 그것도 많이 드시러 오세요. 음식을 사드시면서 본인이 지금껏 이 지역에서 어떤 요리를 해왔는지 이야기해주는 분도 계시고요.
예를 들면 어떤 요리일까요?
단술을 만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쌀을 가공하고 발효시켜서 요거트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통술을 만드시는 거예요. 어르신들마다 자기들만의 노하우가 있고 지역마다 특유의 요리방법이 있어서 어르신들의 팝업스토어 같은 걸 해도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런 시도를 안 하면 로컬푸드의 건강한 전통 제조방식이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질 수 있잖아요.
어르신들 외에 레스토랑 22를 접하는 다른 정읍 사람들 반응도 궁금해지네요.
일단 들어와 사진을 찍으시고는 “정읍에 이런 게 생겼어요?”하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세요. 직접 전화해서는 “정읍천 쪽에 생긴 게 맞냐”고 매장 위치를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로컬에서 일하는 행복
"주위에 항상 웃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희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읍에 직접 내려와 사람과 지역을 경험해보니 어떠세요?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에 되려 신선하게 볼 수 있는 정읍의 매력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직원들과 정읍에서 조그마한 아파트를 얻어 같이 살고 있어요. 주말에 직원들과 내장산의 캠핑장을 갔는데 그곳 밤하늘의 은하수 풍경이 참 좋더라고요. 자연을 보고 정읍을 사랑하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많이 못 가는 상황이잖아요. 국내에서 차박이나 캠핑 같은 방식으로 숨은 여행지를 찾은 젊은이들이 많은데, 정읍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여행지예요. 문화적으로도 좋은 콘텐츠가 될 자원이 많은데 정읍의 젊은 층이 감소하면서 매력 요소를 알릴 사람들이 줄어 아쉬워요.
로컬 자체를 매력적으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로컬마다 다니다 보면 마치 MBTI처럼 나랑 맞는 도시가 있고 안 맞는 도시가 있어요. 제가 생각할 때 로컬에는 약간 그런 매력이 있어서, 기분에 따라 옮겨가면서 그 지역의 매력을 다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읍에 왔는데 너무 아름답고 좋거든요. 근데 이런 도시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무척 아쉽죠.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계속 일하면서 생존력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내려와 사업적인 틀을 잡아야겠죠. 그래서 저희가 운영하는 공유가게 1호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정읍의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청담, 압구정, 성수 같은 도심에서 매장을 운영하셨잖아요? 서울 지역에서의 매장 운영과 정읍에서의 매장 운영은 온도가 많이 다르겠네요.
서울에서 특히 강남과 성수는 막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라면, 정읍은 좀 달라요. 보통은 짧은 기간 안에 프로젝트를 하면 직원 중 한 명은 꼭 번아웃이 오는데요. 정읍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약간 여행 온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몸은 힘든데 공기가 너무 좋고 별이 쏟아지는 자연환경에 있으니 힘든 게 다 풀리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마음의 여유가 저절로 생겨요. 교통 체증이 없어서 그런지 생활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고요.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분들이 주위에 있다는 거예요. 주위에 친절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희들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 정희진 디렉터가 최근 푸드 스타일링을 맡은 성수동 스몰 글라스
지금 이 공유가게는 6개월 동안의 짧은 시도인 거잖아요? 그럼에도 정읍의 매력에 푹 빠지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후의 스탭도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생각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저희가 건물을 알아보고 계속 정착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묻고 싶어요. 레스토랑22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일단 메뉴를 세분화해서 좀 더 저희를 알릴 수 있는 재료를 찾아낼 거고요. 정읍의 재료를 바탕으로 가공 PB상품을 만들려고 해요. 정읍의 청년들에게 직원 교육을 하는 것도 목표예요. 여기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나도 이 지역에서 뭔가를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코로나 이후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보상심리 때문에 음식 소비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 브랜드가 정읍의 농산물로 좋은 음식이 있는 삶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레스토랑 22가 사람들에게 그런 곳으로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레스토랑 22 정보
찾아오는 길 | 전북 정읍시 벚꽃로 374 1층
이용방법 | 인스타그램으로 확인
글 | 이상미 에디터
사진 | 백서희 포토그래퍼